약 4년 전 주니어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커리어를 막 시작하고 있던 나는 개발부터 배포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이해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여느 주니어 개발자들이 그렇듯 최신 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나에 빠져 있었다. 개인 프로젝트로 시도해볼 수 있는 가장 만만한 제품이 “셀프 호스트 개인 블로그”였고, 다양한 기술 블로그 글들과 저자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얻었었으며, 주니어지만 나 또한 이런 생각들을 쌓아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가지고 있는 지식들을 잡다하게 섞어 개인 페이지와 블로그를 만들었었다. 블로그는 1년 남짓 운영하다가 점점 글이 쌓이지 않게 되었고, 일을 진행하면서 쌓인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은 나의 공개, 혹은 방치되어 있는 블로그가 일으킬 문제들을 우려하게 만들었다. 이 막연한 공포가 내가 블로그를 접고 가지고 있던 도메인을 삭제하게 만들었고, 나를 일종의 웹 은둔자로 만들었다.
과거의 실패 경험에도 불구하고 다시 개인 블로그를 시작하기로 다짐한 것은, 그 때 생각했던 문제점들이 사라지거나 옅어져서가 아니라 이러한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를 공개하고 가꾸는 것이 훨씬 큰 효용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거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스스로에게 블로그가 가져다주는 효용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과 나의 생각을 공유하며, 앞으로 이 블로그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을 세우고자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첫 실패에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들과 내가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를 담아내어 보려고 한다.
첫 실패: 블로그의 문제점
블로그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공적이다. 일종의 아주 전통적이고 특수한 SNS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각 SNS는 사용자들의 특성과 제품이 전달하는 가치에 따라 그들이 정의하는 연결의 가치를 컨텐츠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링크드인, X,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그리고 아마 카카오톡… 등 각 SNS에 우리가 어떤 컨텐츠를 올리고 소비하는지, 어떤 빈도로 들어가서 어떤 경험을 기대하는지가 모두 다르다. 비유하자면 다른 SNS들이 팝업스토어라면, 블로그는 마치 해안가 구석에 개업한 카페와 같다. 다른 SNS가 친한, 혹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순간적으로 높은 engagement를 기대한다면, 블로그는 막연히 누군가 찾아오길 기대하면서, 사장 마음대로 영업을 했다 안했다 하고, 단골 손님들이 생기면 자주 찾고, 가끔씩 구글 검색에서 튀어나와 신규 손님들이 들리곤 하는 정도이다. 아무리 검색이나 RSS 등 다른 채널을 통한 홍보로 engagement를 만들더라도, 본질적으로 블로그는 웹의 한 구석에서 크게 관심받지 않는 사장의 개인 공간이다.
이러한 블로그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이 블로그의 공적인 면에서 오는 명확한 단점들 몇 가지를 느낀 뒤로 더이상 이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블로그로 남긴 발자취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일을 시작하면서 느끼게 된 가장 큰 공포 중 하나는 개인정보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취득하기 쉽고 이를 수익화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블로그를 포함하여 누군가와 웹에서 상호작용하는 모든 행위가 웹에 발자취를 남긴다. 개중에는 모두에게 공개되는 것들도 있고 상호작용한 대상들에게만 소유되는 것들도 있는데, 블로그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공적인 공간으로서의 웹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그 발자취를 누구에게나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웹의 장점이면서 단점인데, 나의 공포는 내가 한 번 업로드한 글이 초안부터 수정안, 그리고 삭제했다는 사실까지 낱낱이 기록된다는 점에서 찾아왔다. 도메인을 지우고 몇 년이 지난 지금조차도, 나는 몇 번의 간단한 검색으로 내가 작성했던 글들의 초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1.
개인 브랜딩은 비생산적이다
강한 어조로 문단을 시작했지만, 과거의 나를 포함해 개인 브랜딩(이하 PB; Personal Branding)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꼭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하는 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다소 강조하고자 한다. PB는 스스로의 발자취로 만들어지는 것이지, PB만을 위한 행위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조직에서 가장 탁월한 사람들은 가장 PB를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조직에서 탁월함을 발휘하면서 PB에도 뛰어난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조직에서도 충분히 빛나고 있으면서 넘치는 탁월함의 일부를 PB의 형태로 나타낼 뿐이다. 주객이 전도되어 PB를 위한 에너지 소모로 조직에서의 퍼포먼스가 저하된다면 절대 목적 달성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후자의 상태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현재 하고 있는 활동들과 각 활동에서 소모하는 에너지를 정밀하게 측정하고 분석하는 강한 메타인지가 필요한데, 이를 자연스럽게 달성하는 사람들은 매우 탁월한 조직 안에서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공용 공간인 웹을 황폐화시킨다
링크드인에서 본 글들 중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줬던 글들 중 하나를 인용하고자 한다. 원 저자가 직접 출처를 명시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문장만 옮겨왔다.
스프링에 관한 좋은 자료를 빠르게 찾을 수 있는 꿀팁을 공유합니다.
Tip 1) 구글 검색 시, 도구 - 언어 필터에서 언어를 영어로 변경합니다.
Tip 2) 개인 블로그를 검색 결과에서 제외합니다.
글의 요지는 구글 검색이 공식 문서보다 개인 블로그들을 우선적으로 노출하고 있고, 질 좋은 국문 레퍼런스가 부족하다에 가까웠지만, 첨부된 검색 결과 사진이 나의 가치관을 바꿀 정도의 큰 충격을 줬었다. 아래는 같은 검색어에 대해 내가 다시 검색해서 캡쳐한 결과 화면이다.

이 사진에서의 검색 결과가 검색어에 대해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2
다량의 유사한 정보가 생산되면, 그 정보의 질과 관계 없이 정보 소비자의 피로도를 높이고 접근성을 낮추게 된다. 나는 RestControllerAdvice에 대해 지금도 전혀 아는 바가 없고, 단일 정보 원천으로부터 이것이 무엇인지, 왜 필요하고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하는지 알고 싶다. 그런데 검색 결과 화면의 어떤 글이 내가 원하는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알 방법이 없음이 명백하고, 이는 결국 사용자의 매체로부터의 이탈로 이어질 것이다. 마치 원 글의 저자가 더이상 한국어로 spring 관련 자료를 찾지 않듯이, 정보의 범람이 점점 더 사용자들을 정보 생산자들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글 작성보다 다른 일로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본질적으로 블로그는 글을 쓰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를 일종의 개인 프로젝트로 다루면서 느낀 큰 문제점은 내가 제품 전체에 투입하는 시간에서 글을 쓰는 시간의 비중이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가장 lean하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개인 프로젝트로서의 욕심이 계속 추가 요구사항들을 만들어 글쓰기에 써야 할 시간을 뺏어간다. 글쓰기 외 모든 작업을 medium, obsidian 등의 제품에 전부 위임하여 일을 줄이거나, 글쓰기 외의 작업을 매우 탁월하게 해내어 들이는 시간을 점점 줄여야 했는데, 나는 어느 쪽도 달성하지 못했었다.
다시 시작하기
이러한 치명적인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다시 펜, 혹은 키보드를 잡게 된 계기는 최근 겪었던 번아웃을 극복하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면서 시작되었다.
처음 블로그를 열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나의 고유한 특성 중 하나는 정말 생각이 많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 특성의 명확한 단점은 같은 문제를 다루는데 들어가는 에너지 소모가 크다는 것과,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키는 소용돌이에 쉽게 빠져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잘 제어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종종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거칠게나마 어림해줄 수 있는 영감으로 이어지곤 한다.
최근에 새롭게 깨닫게 된 나를 정의하는 특성들 중 하나는 누군가에게 영감을 나누어주는 순간을 매우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과 만나면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투자를 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과 만나 서로가 최근 겪었던 고민거리와 이에 대한 각자의 대처법과 생각을 나눈다. 그러면서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잡다한 생각의 호수에서 대화중인 상대방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찾아 건네고, 그 정보를 받은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피드백, 특히 영감을 받았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다른 활동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큰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다시 시작하는 블로그는 내가 이러한 경험 정리와 공유를 지속 가능하게 반복하면서도 점점 더 탁월하게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내가 했던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다양한 사람들과 한참 커피챗을 진행하던 때에 이전에 같이 일했던 PO분에게 특별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 분은 “지금 조직에서의 개발 속도가 느린 것 같은데, 이전의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고, 감사하게도 나의 의견을 부탁해 주셔서 같이 탁월한 개발 조직에 대해 고찰해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약 1시간 남짓의 이야기를 마친 후 떠오른 생각은 첫 번째—이 이야기가 휘발되는 것이 너무 아깝다, 그리고 두 번째—더 많은 사람들과 이 이야기를 나누며 피드백받고 다듬어서 나누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글을 써보기로 결심했고, 초안이 완성된 후 처음 이야기 나눴던 PO분을 포함하여 전 직장 동료들, 친구들, 부모님 등 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과 종사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글을 나누어주고 피드백을 수렴하여 지금 블로그에 게시된 버전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글이 다듬어지면서 스스로 생각이 정리되는 것과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과정들 또한 즐거웠지만, 역시 나에게 가장 즐거웠던 경험은 이 글을 읽음으로서 본인이 겪고 있던 문제를 투영하고 분석하여 영감 혹은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는 피드백이었다. 이 한 번의 경험이 내가 앞으로 글을 쓰는 것을 계속 반복하고 싶고, 탁월해지고 싶다는 강력한 목표 의식을 만들었다.
전략적, 계획적, 분석적으로 접근하기
명확한 목표 의식이 존재한 이후에는 이를 탁월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전의 실패에서 내가 두려워했던 지점들과 잘 수행하지 못했던 점들을 회고하여 스스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관성을 잃지 않도록 지속적인 push를 할 필요가 있다. 이 글 또한 이러한 활동의 일환 혹은 시작점으로, 내가 이전 실패에서 가져가야 할 방해 지점들을 좀 더 뚜렷하게 파악하고 메타인지하여 이번의 시도를 성공의 경험으로 연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저번 블로그 활동을 회고하고, 또한 새롭게 몇 편의 글을 쓰고 퇴고를 반복하면서 얻은 메타인지와 회고점 중 대표적인 것을 정리해보면:
- 글쓰기 관점
- 글 쓰기에 들어가는 시간을 측정한다. 생각을 글로 추출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음을 인지한다.
- 글쓰기에 들어가기 전 글 전체 및 각 문단에 담고자 하는 아이디어를 추리고 이를 표현하는데 필요한 글자수를 제한한다.
- 퇴고를 줄인다. 최초 생각해 둔 아이디어가 장문으로 부연했을 때 잘 표현되지 않아 퇴고에서 수정했다면, 왜 처음부터 잘 작성하지 못했는지 회고하고 다음 글부터 같은 병목 지점을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 독자를 잘 정의한다. 전문가 집단을 위한 글인지, 모두를 위한 글인지, 각 그룹의 사용자들에게 충분한 engagement를 일으킬 수 있는 내용인지 고민한다.
- 글쓰기 외 관점
- 글 작성 외 블로그 관리에 쓰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개발은 90% 이상 vibe coding으로 작성하고 검수만 한다. 개발에 들어가는 시간을 측정하고 역치를 넘기지 않는다.
- analytics로 각 글의 engagement와 사용자들의 retention을 측정한다. 내 글이 어떤 그룹의 사용자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흥미를 유발하는지 분석한다.
- 관심있는 사람들이 많은 채널을 찾는다. ex) linkedin
이러한 지점들을 발견하고 개선하고 점점 내가 소비하는 시간을 줄이면서도 목적을 탁월하게 달성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느껴지는 효용감은 내가 잘하는 것을 어떻게 더 잘하게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OKR
격주마다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다면 연간 약 25편의 글을 쓸 수 있다. 내 기준에서 이 숫자는 너무 부족하지만, 실제로는 격주에 한 편도 굉장히 힘든 목표이기 때문에 글을 써나가며 분량과 쓰는 속도를 조절해나갈 필요가 있다. 구체적인 활성 사용자 수의 목표를 잡지는 않았지만, 첫 글이 과분한 관심을 받은 김에 몇 가지 야심찬 목표 지표들을 개인적으로 세우고 있다. 가장 도전적인 목표는 retention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준비중인 글 주제들은 한 분기 내에 블로그로 전부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엔지니어링:
- DR: 재해 대비와 대응
- Bus Factor
- 프로그래밍 언어와 인간공학
- 프로답게 일하기: 번아웃 정복하기, 회고를 체화하기, …
- Rust
- 2024의 RPITIT(Return Position Impl-Traits in Traits)과 async trait
- async runtime 해체 분석 - 철학부터 구현까지
- 모바일 UX 은탄환 찾기
- ML: Hyperparameter Optimization 기초
엔지니어링 외:
- 보험 산업 Pirate Metrics로 바라보기
- 나의 보안과 개인정보를 스스로 관리하는 원칙들
- 개인 자산 관리의 수리통계학적 접근
Anecdotes:
- 독후감: 시지프 신화, 미움받을 용기, …
- 영화 리뷰
- 기업 리뷰, 제품 리뷰
- 개인 프로젝트 소개
개인의 잡다한 생각을 접는 공간인 anecdotes는 해안가의 카페 처럼 남겨두고 나의 자기만족을 주 목적으로 작성하려고 하며, 따로 inorganic engagement를 만들 생각은 없다. essays는 지속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노출하고 그 성과를 측정하여 계속 engagement를 개선해나갈 생각이다.
이번의 실패는 저번과 같이 실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다. 이전보다 나에 대해 내 스스로의 이해도가 높아졌고, 무엇보다 내가 즐거워하는 일은 굳이 집착적으로 목표 달성을 좇지 않더라도 내게 성공의 경험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